저는 아들 하나만 두고 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늦은 탓에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입니다. 제가 사회경험을 아무리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데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학부모로서의 경험과 지혜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순수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고 때로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들과 함께 줄넘기 연습을 했습니다. 50개 이상을 넘어야 하는 것이 학교에서 제시한 목표였는데 몇 개를 남겨두고 힘겨워 하면서 계속 멈춰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몇 개만 더하면 되는데 50개를 불과 몇 개 남겨두고 자꾸 멈춰버리니 안타까웠습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목표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겠는데 마흔 몇 개에만 이르면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에 계속 멈춰버리니 처음의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짜증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넌 할 수 있어! 네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어! 힘들더라도 이를 악물고 뛰어!”라고 큰소리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분하게, 좀 더 다정하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몇 개만 더하면 되는데 그 순간 힘들다고 마흔 몇 개에서 자꾸 멈춰버리니 그때는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가?”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계와 같은 지금의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혹시 치졸한 변명으로써 ‘이것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 말입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는 자신이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그것쯤은 문제없어.”라고 말하면 어느새 자신감이 생깁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진짜 할 수 있을 가능성도 확실히 높아집니다.
인간의 뇌에는 ‘측좌핵’이라는 부위가 있다고 합니다. ‘측좌핵’은 ‘의욕’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측좌핵’이 자극을 받아 의욕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바로 그 순간 의욕은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을 입과 머리에 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전자제품의 전원을 꺼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할 수 있다. 분명히 방법은 있다. 한번 해 보자.”라는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방법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은 우리의 힘과 자신감을 앗아가고 우리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이라도 떨쳐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이 어떻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50개를 몇 개 남겨두고 줄넘기를 계속 멈춰버렸던 저의 아들은 “할 수 있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난 다음 50개는 당연히 뛰어 넘었고 100개, 200개도 단번에 하게 되었습니다. 줄넘기라는 사소한 일이었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진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의 아들에게 이 경험은 그 다음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이를 이겨 낼 힘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잃어버렸던 자신감도 다시 생기고 없었던 힘도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써 저는, 비록 지금은 여전히 가슴 답답한 현실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 가운데 사로 잡혀있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내일을 꿈꾸며 “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두 손에 힘을 불끈 쥐어 봅니다.